김훈 《하얼빈》 개인평점 4.2/5
청년 안중근을 조명하는 나름의 가치를 갖는 책
- 저자
- 김훈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22.08.03
이 소설 한 권을 쓰는데 작가 김훈은 채 반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젊은 시절부터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빠르게 글을 써냈을 수도 있다.
책의 커버에는 ‘『칼의 노래』를 넘어서는 김훈의 새로운 대표작’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말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초반을 넘어가면서 순종과 이토의 여정이 그려지는데 약간은 뜬 구름 잡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이의 짧은 평에서 ‘소설의 한계’라는 내용을 보았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역사 무지렁이들은 이런 책을 통해서 역사에 한 발 더 다가간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는 가까우면서 불편하다.
이 책은 그런 근대사의 여러 면을 보여준다.
한 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의병의 이야기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서 하얼빈으로 이동해 계획을 성공시킨 후 여순감옥에 투옥, 재판, 사형되면서도 뜻이 ‘동양 평화’에 있음을 밝히는 그 당당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다부진 신체와 담대한 성품을 대대로 물려받아야 할 것이며 치밀함과 사격실력 등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강인한 신체를 물려받지는 못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려는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자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중근重根이라는 이름은 어린시절 이름인 안응칠의 무인의 성정을 눌러주고자 ‘무거운 뿌리’라는 의미로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한낱 이름이 그 시절 안중근의 운명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그렇게 힘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책들이 소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다.
안중근 의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기도 하고 사진을 봐도 다시 보게 된다.
또한 안중근 의사와 함께 했고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신 독립운동가 우덕순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메이지유신’이다.
메이지유신에서 메이지는 일본의 새로운 정치체제의 연호이며 일본 천황의 호칭이다.
메이지는 주역에서 따온 말로 아래 문구에서 명明과 치治(밝게 다스린다) 두 글자를 가져온 것이다.
『성인이 남면해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 聖人南面而聽天下
밝음을 향해 나아가며 다스린다 嚮明而治』
그리고 유신維新이란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즉 일본 천황이 천하의 소리를 듣고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오만함이 동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박정희대통령의 유신정권, 유신독재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 메이지유신의 의미를 잘 배웠다면 지금도 잊지 않았을 텐데 무턱대고 외워야만 했던 그 시절이 아쉽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당시 천주교의 입장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2000년이 되어서야 천주교로부터 ‘살인을 저지른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교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저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겠지만 권력에 의지해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종교라면 그 종교의 가치는 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몇몇 종교인의 생각, 행실로 그 종교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소설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책의 후기에 적었다.
후기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친척들이 어떻게 그 세월을 버티며 살았는지 그리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 나와있다.
나름 지방의 부호를 이루었던 일가친척들이 그렇게 평탄하게 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런 만큼 기억되어야 한다.
또한 책의 첫 부분에 제공되는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이동경로는 독자에 대한 배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걱정을 했던 부분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흥미롭기만 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중근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있었고 이 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주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소설이지만 안중근 의사의 짧고 굵직했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처럼 언젠가 유해가 발굴되어 국내로 송환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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